"조기교육은 부모 신경안정제… 갈수록 강한 약 찾게 돼"
"조기교육은 부모 신경안정제… 갈수록 강한 약 찾게 돼"
  • 김윤정·최규화 기자
  • 승인 2020.02.25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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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살 사교육, ‘불안’을 팝니다⑫] 이남수 「솔빛이네 엄마표 영어연수」 저자(下)

【베이비뉴스 김윤정·최규화 기자】

연간 3조 7000억 원 규모로 추정되는 영유아 사교육비. 등골 휘는 비용에도 많은 부모들은 ‘불안’ 때문에 오늘도 사교육을 선택하고 있다. 그 불안의 실체는 무엇일까. 우리에겐 어떤 대안이 있는 걸까. 베이비뉴스는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공동기획으로 열두 명의 전문가들을 직접 찾아가 답을 구했다. - 기자 말

☞ (상편) "사교육과 도박의 공통점, '본전' 생각에 못 끊는 것"에서 이어집니다.

이 강사는 부모들이 갖는 교육에 관한 대표적 고민 중 하나로 ‘불안’을 꼽았다. 서종민 기자 ⓒ베이비뉴스
이 강사는 부모들이 갖는 교육에 관한 대표적 고민 중 하나로 ‘불안’을 꼽았다. 서종민 기자 ⓒ베이비뉴스

엄마표 영어연수를 하는 많은 엄마들이 학원이나 과외 등의 양념을 개인의 입맛에 따라 가미할 수는 있지만, 그 시기가 잘못되거나 지나치게 많은 양의 양념을 쳤을 경우 요리도 망치고 아이의 건강도 해칠 수 있다는 점을 꼭 기억했으면 한다. 특히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교육 기관은 양념 중에서도 아주 자극이 강한 화학조미료를 사용하는 것으로 비유하고 싶다. 화학조미료보다는 정성과 신선한 재료로 우러난 맛을 내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이다.(「솔빛이네 엄마표 영어연수」 101쪽)

불안 때문에 사교육을 선택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건 아니다. ‘내가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우리 아이만 뒤쳐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은 대부분 부모들에게 떨칠 수 없는 고민이다.

이 강사는 사교육을 ‘병원’에 비유해 설명했다. “평소에 스스로 식습관을 관리하고 운동도 열심히 해야 건강할 수 있는 거지, 매일 병원에 간다고 건강해지지는 않는다”는 것. 공부 역시 기본적으로 아이가 스스로 주도해 나가면서, 사교육이 필요할 때만 적당한 수준에서 활용하는 것이 좋다는 말이다.

이 강사는 조기교육을 ‘신경안정제’에 비유하기도 했다. 아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도 아니고, 조기교육이 아이에게 오히려 좋지 않다는 전문가들의 견해도 있지만, 결국 부모의 ‘불안’ 때문에 선택하는 조기교육.

이 강사는 “당장 조기교육이라는 신경안정제로 위안이 된다면 좋지만, 그것도 너무 많이 복용하면 내성이 생겨서 점점 더 강한 약을 먹어야 하는 지경에 빠진다”며, 적당한 선에서 활용하는 지혜를 주문했다.

이 강사는 부모들이 교육문제에 있어서 ‘중심’을 잃지 않기 위해서 공동체를 이뤄 함께 고민하기를 권했다. 그 역시 “생각이 같은 사람들, 고민을 나누고 토론할 수 있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만나왔다”며, “서로 시행착오를 나누고 그 경험을 건강한 문제의식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부모 공동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강사가 지금도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울산부모교육협동조합,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등의 교육시민단체 활동을 이어오는 까닭 역시 그것이다. 이 강사는 지금도 강의와 상담으로 만나는 부모들을 지역마다 공동체로 엮어주고, 그들 스스로 경험을 나누고 고민을 함께하도록 하는 일을 돕고 있다. 

이 강사는 특히 제주도의 학부모 모임인 ‘들엄시민’(‘듣다보면’이라는 뜻의 제주도 말)의 사례를 소개했다. 사교육 없이 영어를 가르치기 위해 새로운 대안을 고민하고, 그 대안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학부모들의 모임. 이들의 사례는 EBS 특집 다큐멘터리로도 제작돼 지난 2018년 방영된 바 있다.

◇ "사교육은 '병원'… 매일 병원 간다고 건강해지는 것 아냐"

영유아를 대상으로 한 영어학원과 영어유치원 등이 영업 중이다. 서종민 기자 ⓒ베이비뉴스
영유아를 대상으로 한 영어학원과 영어유치원 등이 영업 중이다. 서종민 기자 ⓒ베이비뉴스

Q. 최근 SNS를 통해 ‘엄마표’ 교육 정보를 얻고 따라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유의해야 할 점이 있을까요?

“SNS로 떠도는 ‘엄마표’ 교육을 따라하는 건, 그 집 아이와 시행착오를 같이 해가는 게 제일 문제입니다. 초보들끼리 실시간으로 시행착오를 공유하는 것, 어찌 보면 아이를 가지고 실험하는 거죠. 그건 그 집 애 이야기일 뿐이에요. 참고 정도는 할 수 있겠지만, 남의 집 애보다 우리 애가 뭘 잘하는지 더 알아보세요.”

우리 아이를 파악하고 싶으면, 아이의 하루 생활을 시간대별로 한번 기록해보세요. 거기서 아이가 원해서 하는 것, 엄마가 시켜서 하는 것 또는 주도적으로 즐겨서 하는 것, 해야 하니까 억지로 하는 것 등으로 분류해보세요. 보통 ‘내 아이는 내가 제일 잘 안다’고 착각하는데, 내가 알고 있던 것과 많이 다를 수 있어요.”

Q. ‘엄마표 영어’에서는 교재 선택도 중요합니다. 교재를 선택할 때 생각해야 할 기준이 있을까요?

“제목에 ‘100일의 기적’, ‘7주 완성’ 이런 말들이 있는 교재는 무조건 피하세요. 절대 그런 일은 없어요. 언어를 배운다는 게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잖아요? 기간을 정해놓고 ‘이거면 된다’ 하는 건 말도 안 되죠.

또 지나치게 촘촘하게 로드맵을 따라 단계적으로 짜여 있는 교재도 피하세요. 부모들이 볼 때는 그게 체계적이라 좋다고 느끼지만, 그만큼 아이를 틀 속에 가둘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로봇이 아닌 이상, 그건 불가능해요. 아이들은 절대로, 교재가 설정해놓은 것처럼 다 똑같지가 않으니까요.

그건 꼭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평생 입을 옷을 다 사놓는 것과 같아요. 몇 살 때 이 옷 입고, 몇 살 때는 또 이 옷 입고. 아이가 언제 얼마나 클지 어떻게 알아요? 교재도 그런 식으로 구성된 것은 위험할 수 있죠.

그때그때 아이가 자기한테 필요한 교재를 직접 고르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주도학습입니다. 교재가 미리 다 짜여 있으면 아이의 주도성이 들어갈 틈이 없죠. 기본적으로 학교의 교육과정을 따라가되, 아이가 특별히 자기한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교재는 자기가 고를 수 있게 해야 창의적 주도학습이 가능해요.”

Q. ‘엄마표’ 교육을 통해 학습 외적으로 또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있을까요?

“시간이 엄청 절약되죠. 학원 왔다 갔다 차 타고 다니는 시간을 아낄 수 있잖아요. 그리고 당연히 돈이 절약되죠. 제일 중요한 건 아이들의 삶의 에너지가 절약된다는 겁니다. 아이들이 학원 다니느라 써버릴 시간과 에너지를 아꼈으니까 놀 수가 있어요. 놀이시간이 확보되기 때문에 아이들이 굉장히 좋아합니다.

그리고 ‘엄마표’ 교육은 아이에 대해 파악해야 하잖아요? 학습 외적으로도 아이의 성향이나 속마음도 많이 알게 됩니다. 부모와 아이의 ‘좋은 관계’가 ‘엄마표’ 교육의 전제조건이기 때문에 당연한 거죠. 실제로 멘토링을 받은 부모들 중에는 ‘영어 때문에 시작했는데 가정의 평화까지 얻었다’는 분들이 있습니다.”

2013년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영어사교육포럼에서는 “효과적인 ‘엄마표 영어’를 위한 원칙”으로 ▲엄마 의욕만 앞세우지 말자 ▲아이의 흥미와 특성을 잘 아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가 영어학습을 할 준비가 되었는지 관찰하고 의논한다 ▲다른 아이와 비교하거나 다른 사람의 방식을 따라하지 않는다 ▲아이가 즐기고 있는가 이외의 다른 평가는 하지 않는다 ▲교재와 교육 방법은 아이 중심으로 선택한다 ▲꼭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리자 등을 들었다. 표현은 다양하지만 결국 원칙은 ‘아이 중심’에 있다.

이 강사가 강조한 것도 같다. ‘엄마표 교육’을 하기에 앞서 아이에 대해 정확히 파악해보는 시간을 가질 것을 숙제로 제시했다. 그는 “부모가 먼저 아이의 성향을 파악하고, 또 아이 스스로 자기가 해낼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성찰할 수 있게 해야 한다”며, “아이의 성찰을 도와주는 게 부모의 주요 업무”라고 말했다.

정답은 없다. 다만 ‘그 아이’와 ‘그 부모’만의 길을 ‘좋은 관계’ 속에서 꾸준히 찾아야 할 뿐. 이 강사는 “부모들이 다른 아이들이 어떤 성과를 냈는지는 알고 있지만 정작 내 아이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며, “아이는 성장하며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에 성장에 맞춰 계속 관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강사가 아이를 가르칠 때도 ‘아이가 싫어하면 억지로 시키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켰다. “사회적인 요구에 맞추려고 하지 않았고 내 아이 스타일에 맞췄다”는 그는 “그게 부모의 역할”이라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 "'100일 완성' 말하는 교재 무조건 피해라… 그런 일은 절대 없다"

이 강사는 듣기 환경이 잘 조성되면서도 공교육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교육 방식을, 올바른 영어 교육법으로 추천했다. 서종민 기자 ⓒ베이비뉴스
이 강사는 듣기 환경이 잘 조성되면서도 공교육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교육 방식을, 올바른 영어 교육법으로 추천했다. 서종민 기자 ⓒ베이비뉴스

Q. 아이 스타일에 맞춰서 가르치는 게 제일 좋다는 걸 머리로는 알아도, 당장 주변에서 들려오는 ‘사회적 요구’를 무시하기가 참 쉽지 않습니다. 남보다 빨리 나서지 않으면 영영 따라잡지 못할 것도 같고요.

“아이를 키우는 건 전자게임하고 똑같은 것 같아요. 게임을 할 때도 아이템도 착실히 먹고 포인트도 챙기면서 가야 되잖아요. 무조건 스테이지만 빨리 넘어간다고 능사가 아니에요. 아무리 스테이지를 빨리 뛰어넘어도 모아놓은 아이템이나 포인트가 부족하면 나중에 ‘끝판왕’을 만났을 때 ‘클리어’ 할 수가 없어요.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조기교육 하고 빨리 빨리 레벨만 올리는 건, 게임으로 치면 아이템은 안 모으고 스테이지만 빨리 넘기는 거예요. 아무리 열심히 해도 결국 성공할 수 없어요. 게임은 다시 시작할 수라도 있는데, 아이를 키우는 건 늘 생방송이잖아요. 다시 되돌릴 수 없으니까 모든 단계에서 신중해야 합니다.

아이 키우기라는 게임에서 모아야 할 아이템은 아이와의 관계, 아이와의 추억이에요. 모아야 할 때 모아놓지 않으면 나중에는 절대 못합니다. 어렸을 때 ‘신뢰감 통장’에 잔고를 많이 만들어놔야 사춘기 때 빼서 쓸 게 있어요. 조기교육 한다고 아이랑 관계를 망치고 신뢰감 통장이 텅텅 비면 나중에 정말 힘들어져요.”

Q. 마지막으로 근본적인 질문을 하나 드리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영어교육의 목표는 어디에 둬야 할까요?

“영어교육의 목표는 ‘시험 점수 몇 점’이 아니라 ‘세계시민으로 키우는 것’이 돼야 합니다. 우리만의 경쟁이 아니라 세계를 이해하는 차원에서 흘러가야죠. 세계와 소통하고 공감하는 도구로 영어를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영어를 배워가는 과정 역시 아이들이 배려받고 존중받고, 주도성을 발휘할 기회를 충분히 가져야 하죠.

영어를 어떻게 가르쳐야 하나 생각하면 많이 불안하죠. 그래서 사교육을 고민하는 것 아닙니까. 불안한 건 알겠는데, 한편으론 부모들이 크게 착각하곤 합니다. 아이를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이는 독립된 인격체입니다. 아이를 내 마음대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안 돼요.

아이 키우는 건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사회적으로 인정받기는커녕 무시당하고 있어요. ‘능력 없으면 집에서 애나 보라’는 식으로 말이죠. 부모의 불안도 부모 잘못이 아니에요. 교육과 사회제도의 경쟁적인 측면 때문인데, 그 또한 부모 탓으로 돌리고 비난하곤 하죠. 그래서 아이 키우는 일이 더 어려워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이기에 최선을 다해야 하겠죠. 우리가 아이들을 위해 뭘 할 수 있을지, 어떤 걸 할 수 있을지 차근차근 살피다보면 길이 보일 겁니다. 결국 아이의 행복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죠.”

아이의 홈스쿨링을 통해 배움의 길이 아주 다양하다는 사실을 경험했다. 우리 모두 얼굴이 다 다르듯 배우는 방식도 살아가는 방식도 다르며, 누가 맞고 누구는 틀린 것이 아님을 인정하고 믿어주는 것을 배웠다. 서로 다른 이들이 모여 조화를 이루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가 아닐까 생각한다. 건강한 사회를 만들고 그 안에서 살아갈 미래의 구성원들을 위해 누구나 자기 재능을 찾고 인정받고 키울 수 있는 다양한 배움의 기회가 공교육 안에서 우리 아이들 앞에 펼쳐지길 진심으로 바란다. 그렇게 되기 위해 우리 모두 힘을 모았으면 좋겠다.(「솔빛엄마의 부모 내공 키우기」 2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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