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 영어학원이 유치원 행세… 전일제 운영 규제해야”
“유아 영어학원이 유치원 행세… 전일제 운영 규제해야”
  • 김재희·최규화 기자
  • 승인 2020.01.06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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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살 사교육, ‘불안’을 팝니다①] 이기숙 이화여자대학교 명예교수 인터뷰(下)

【베이비뉴스 김재희·최규화 기자】

연간 3조 7000억 원 규모로 추정되는 영유아 사교육비. 등골 휘는 비용에도 많은 부모들은 ‘불안’ 때문에 오늘도 사교육을 선택하고 있다. 그 불안의 실체는 무엇일까. 우리에겐 어떤 대안이 있는 걸까. 베이비뉴스는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공동기획으로 열두 명의 전문가들을 직접 찾아가 답을 구했다. - 기자 말

☞ (상편) “선행학습은 아동학대와 같다… 사회적으로 ‘NO’ 외쳐야”에서 이어집니다.

지난해 9월 17일 서울 신교동의 우당기념관 회의실에서 이기숙 이화여자대학교 명예교수와 인터뷰했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지난해 9월 17일 서울 신교동의 우당기념관 회의실에서 이기숙 이화여자대학교 명예교수와 인터뷰했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아이들이 자라나는 데는 그 시기마다 발달 단계가 있고, 자신들만의 눈높이가 있다. 그것을 함부로 거슬러 가르치면 제대로 된 성장 발달을 이루기가 힘들다. 각각의 발달 시기에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교육이 접목된다면 가장 효과적인 성장 발달을 이루어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적기교육이다.(「적기교육」 44쪽)

조기교육에 반대되는 이 교수의 대안은 ‘적기교육’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 교수는 “세 살에 가르칠 게 있고 네 살에 가르칠 게 있으니, 아이들을 가르치되 발달단계에 맞는 교육을 하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아이들의 신체발달에는 일정한 순서와 방향성이 있다. 그리고 신체가 급속도로 성장하는 시기가 있는가 하면 언어가 집중적으로 발달하는 시기가 있는 등, 영역마다 발달의 속도는 모두 똑같지가 않다. 아이에 따라 개인차가 있는 것도 당연하며, 여러 영역의 발달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는 사실 역시 중요하다.

Q. 적기교육의 뜻을 ‘학습에는 그에 적합한 때가 있으니 몇 살에는 꼭 무엇을 가르쳐야 한다’는 식으로 오해하는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건 사교육 시장의 홍보 논리와 크게 다르지 않을 텐데요.

“학습만을 교육이라 생각하는 것부터 잘못됐죠. 영유아기에는 먹고 입고 자는 기본 생활습관이 모든 것의 바탕인데, 그걸 교육이라 생각하지 않는 점이 큰 문제입니다. 유아교육은 생활 속에서 놀이 중심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어요. 놀이가 곧 교육이죠. 적기교육을 하려면 ‘교육=학습’이라는 오해부터 깨버려야 해요.”

Q. 교수님의 연구에서 영유아 조기교육 1·2위가 한글과 영어로 나타났는데요, 그만큼 언어교육에 대한 부모들의 불안이 큰 거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영유아기의 발달에 맞는 언어교육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유아기 언어의 특징을 알아야 해요. 아이들은 언어에 총체적으로 접근해요. 이야기를 가지고 놀면서 이야기 속에서 문장을 찾아내고, 문장이 이해되면 단어가 보이고, 단어 속에서 자음과 모음을 발견하는 거예요.

그게 유아교육의 접근법이어야 하는데 사교육에서 하는 언어교육은 정반대로 가잖아요. ‘가나다라’부터 배우는 아이는 단순한 독해는 하겠지만 이해력이 떨어져요. 사교육에서는 읽기와 쓰기만 집중적으로 가르치는데, 언어교육은 듣기, 말하기, 쓰기, 읽기 네 가지 과정이 복합적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 “발달단계와 아이만의 눈높이 맞추는 게 ‘적기교육’ 참뜻”

Q. 「적기교육」에서 “아이가 ‘새우깡’이라는 글자를 이해하는 것은 글자 자체를 읽는다기보다는 그 과자 봉지의 모양과 색깔, 자기가 먹어본 경험 등에 의해서라고 할 수 있다”라고 하신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학습지에서 ‘봄에 새싹이 파릇파릇 올라왔네’라는 문장을 읽는다고 ‘파릇파릇’이라는 개념을 알겠어요? ‘아지랑이가 아롱아롱 피어올랐다’ 하고 책에서 읽어본들 이해가 되겠어요? 경험으로 느끼지 못하면, 그 단어를 읽기만 할 뿐 개념을 알 수가 없어요.

그게 유아들의 언어예요. 무조건 유아기에 한글교육 시키지 말라는 게 아닙니다. 다만 문자 해독 중심이 돼선 안 된다는 거죠. 풍부한 언어 경험을 가지고 초등학교에 가면 글자 못 익히는 아이는 거의 없어요. 정 불안하면, 3월 입학 전 1·2월에 가르치세요. 그때 반짝 가르친다고 해도 절대 늦지 않아요.”

Q. 유아기 언어교육을 위해서 책 읽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모들이 많습니다. 아이와 함께 책을 읽을 때 유념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요?

“책 읽는 목적이 글자 공부가 돼서는 안 됩니다. 그냥 책을 주면서 혼자 읽으라고 하면 절대 안 돼요. 아이 입장에서는 글자는 읽을 줄 알아도 내용이 이해되지 않으니까 고통스럽고, 책을 싫어하게 될 수도 있어요. 아이가 글자를 익혀서 혼자 읽을 수 있다 해도 부모가 읽어주는 게 좋습니다.

아이들은 이야기 속에서 상상하는 재미에 책을 읽는 거예요. 글을 읽는 것은 부수적이죠. 우선 이야기에 빠져들게 해야 아이들이 책을 좋아하게 돼요. 책은 한글 교재가 돼선 안 돼요.”

이미 하나의 사회적 병폐가 된 영유아기 조기교육 ‘광풍’. 우리 사회가 해야 할 일이 많다. 우선 부모들이 조기교육을 선택하게 되는 주요한 원인인 ‘불안’부터 줄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 교수는 부모가 되기 전부터 ‘어떤 부모가 될 것인가’를 준비하는 부모교육을 통해 불안을 해소할 수 있다고 봤다. 이 교수는 “부모가 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모르고 살다가 막상 부모가 돼서 육아를 하려니 어렵고 불안한 것”이라며, “젊은이들이 부모가 될 준비가 전혀 안 돼 있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예비부모 교육이 사실상 전무하다”고 개탄한 이 교수는 “대학교 교양과목으로 아동발달 등을 가르치고, 학교뿐 아니라 지역사회에서도 부모교육을 많이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정부가 정책적 결정을 하는 데도 신중함과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대표적인 것이 유치원 방과후 영어. 2018년 10월 교육부는 유치원 방과후 과정에 ‘놀이 중심’ 영어 수업을 허용했다.

하지만 이 교수는 “효과가 하나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 교수는 “영어 노래 좀 따라 부르고 단어 몇 개 외우는 것에 뭐하러 돈을 쓰나”라고 되물으며, “초등학교 3학년 때 하면 한 시간 만에 다 할 수 있는 것을 유치원 때 억지로 시키느라 아이들을 주눅 들게만 할 뿐”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놀이 중심’ 수업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놀이를 이용해서 학습하겠다는 생각은 교육이 아니”며, “학습을 위한 놀이 역시 진정한 놀이가 될 수 없다”는 것. 이 교수는 “‘억지로 시키지 않고 놀면서 시켜요’라는 것이야말로 사교육 시장의 홍보논리”라며, “놀이를 가장한 독한 사교육이 등장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진도를 정하고 학습한 것에 대해 시험과 같은 평가를 하면 그것은 놀이학습법으로써의 가치를 잃게 된다. 그런데 우리나라 부모들은 아이와 시계놀이를 하면서도 시계를 보는 법을 가르치려고 한다. 놀이를 할 때는 아이가 시계를 가지고 마음껏 놀게 하자. 중요한 것은 간섭이 아니라 관찰이다.(「적기교육」 86쪽) 

◇ “행복하지 못한 유아기… ‘마음의 근육’ 소실은 큰 문제”

이 교수는 “마음의 근육을 잘 길러주고, 행복하게 자라면서 자신감을 키우게 해야 해요”라고 당부했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이 교수는 “마음의 근육을 잘 길러주고, 행복하게 자라면서 자신감을 키우게 해야 해요”라고 당부했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이 교수의 목소리가 가장 높아진 때는 ‘유아대상 영어학원’ 이야기를 할 때였다. 이 교수는 “영어학원이 교육기관인 유치원 행세를 하고 있는 게 너무 속상하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 교수는 “유아대상 영어학원이 유치원하고 똑같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운영하고 있다”며, “초등학생 대상 학원들도 정규교육 시간이 끝난 이후에 수업을 하듯이 유아대상 영어학원도 전일제 운영은 못하게 하고 초·중·고처럼 방과후에만 학원으로써 운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덧붙여 “정부가 의지만 있으면 규제할 수 있지만 어느 정부도 그런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현행 유아교육법은 “이 법(유아교육법)에 따른 유치원이 아니면 유치원 또는 이와 유사한 명칭을 사용하지 못한다”(제28조의2)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른바 ‘영어유치원’이라는 명칭은 실제로 널리 쓰이고 있다.

현재 유아대상 영어학원에 대한 규제는 ‘유치원’ 명칭 사용 금지가 사실상 유일하다. 이 교수는 명칭뿐만 아니라 운영 역시 전일제 운영은 규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만 1세부터 시작하는 영어학원의 교육 연령이 너무 낮은 것, 월 평균 100만 원이 넘는 교육비로 위화감을 부추기는 것 또한 심각한 문제로 꼽았다.

이 교수는 근거 없는 불안들이 조장하는 방송에 대해서도 유감을 표현했다. 이 교수가 언급한 ‘공부가 머니?’에서는, 한 ‘전문가’가 연예인 출연자의 다섯 살 딸에게 선행학습을 권하는 장면이 있었다. 또 다른 아이의 사례에서는 아이가 엄마랑 그림 맞추기 놀이를 하다가 지니까 분해서 패대기를 치는 장면이 나왔다.

이 교수는 “진짜 전문가라면 선행학습을 해야 한다는 말을 할 게 아니라 ‘패대기’ 치는 아이의 장면을 지적했어야 한다”며, “방송에서 전문가라고 해서 출연시킬 때는 사람을 신중하게 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우리 아이를 평생 행복하게 살게 할 선물은 ‘가나다라’와 ‘ABC’를 가르치는 학습지 속에 있지 않다. 이 교수는 인터뷰를 마치며, 아이에게 ‘마음의 무기’, ‘마음의 근육’을 선물하라는 당부를 거듭 강조했다. 

“아이에게는 ‘언제나 나를 믿어주는 엄마 아빠가 있다, 나는 사랑받는 존재다, 나는 잘 태어났다’라는 확신이 필요합니다. 유아기 때는 자신감이 넘쳐야 해요. 절대적으로 행복해야 해요. 요즘 아이들은 마음의 무기, 마음의 근육이 소실되고 있어요. 나를 지지하는 사람도 없고, 고립된 것 같고, 불행해질 것 같은 마음.

유아기를 행복하게 보내는지 아닌지는 한 사람의 일생에서 정말 중요해요. 유아기가 몇 천 년 되지 않아요. 마음의 무기, 마음의 근육을 잘 길러주고, 행복하게 자라면서 자신감을 키우게 해야 해요. 그게 아이에게 중심이 되면 대인관계든 공부든 다 잘 할 수 있어요. 부모가 먼저 신념을 가지고, 불안해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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