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후 10개월' 지은이, 영어 조기교육 이미 늦었다고요?
'생후 10개월' 지은이, 영어 조기교육 이미 늦었다고요?
  • 김정아·최규화 기자
  • 승인 2020.01.22 16: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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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살 사교육, ‘불안’을 팝니다⑥] 이병민 서울대학교 영어교육과 교수 인터뷰(上)

【베이비뉴스 김정아·최규화 기자】

연간 3조 7000억 원 규모로 추정되는 영유아 사교육비. 등골 휘는 비용에도 많은 부모들은 ‘불안’ 때문에 오늘도 사교육을 선택하고 있다. 그 불안의 실체는 무엇일까. 우리에겐 어떤 대안이 있는 걸까. 베이비뉴스는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공동기획으로 열두 명의 전문가들을 직접 찾아가 답을 구했다. - 기자 말

돌이 되기 전부터 영어사교육에 열을 올리는 부모들의 모습이 방송을 통해 전해졌다. ⓒTV조선 방송화면캡쳐
돌이 되기 전부터 영어사교육에 열을 올리는 부모들의 모습이 방송을 통해 전해졌다. ⓒTV조선 방송화면캡쳐

#TV조선 ‘아내의 맛’이라는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며 큰 인기를 끌고 있는 한 탤런트 커플은 최근 돌쟁이 딸을 키우는 육아 일상도 공개하며 대중들의 공감을 끌어내고 있다. 그중 2019년 12월 초 방송된 영어 조기교육을 둘러싼 이 부부의 의견 차이가 또 한 번 주목받았다.

10개월이 된 딸 지은(가명)이를 데리고 문화센터에 방문한 부부는 자녀 또래의 아기들이 모두 영어 조기교육을 받고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영어 동요를 들려주거나 영어로 말을 거는 등의 방법으로 또래 아기의 부모들은 모두 이미 영어교육에 열을 올리고 있었던 것.

이에 부부의 남편은 방문 영어 선생님을 집으로 불러 상담을 받게 되고, 교재비만 600만 원에 달한다는 얘기에 아내는 한 번 더 충격을 받는다. 비싼 교재비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영어 조기교육을 시켜야 한다고 주장해 이 부부가 갈등을 빚는 모습이 방송을 통해 전해졌다.

지은이의 사례처럼 조기 영어교육 시작 시기는 점점 ‘초(超)저연령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지난 2014년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유은혜 국회의원실이 서울-경기지역 학부모 7628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다. 그 결과 만 3세에 영어교육을 처음 시작한 경우가 조사 당시 고등학생 중에서는 3.2%에 불과했으나, 유아 중에는 그 비율이 35.3%에 달했다. 약 10년 전에 비해 11배나 늘어난 것이다.

같은 조사에서 유아교육기관(유치원)의 영어교육 실태를 살펴보니, 전체 유치원의 72.7%가 영어교육을 하고 있었으며 국공립 유치원은 42.9%가, 사립 유치원에서는 83.9%가 영어교육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유아 시기의 영어교육은 점점 더 낮은 연령대로 내려가면서 필수처럼 자리 잡고 있다는 얘기다.

◇ "결정적 시기 놓치면 영어 못한다? 한국 현실에 안 맞는 얘기"

이병민 서울대학교 영어교육과 교수는 '결정적 시기 가설'이 우리 나라와 같은 환경에서는 맞지 않다고 얘기한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이병민 서울대학교 영어교육과 교수는 '결정적 시기 가설'이 우리 나라와 같은 환경에서는 맞지 않다고 얘기한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이처럼 영어 조기교육을 시작하는 나이가 점점 낮아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병민 서울대학교 영어교육과 교수는 그 원인 중 하나로 ‘결정적 시기 가설(Critical period hypothesis)’의 영향을 말한다.

이병민 교수는 교육부 영어과 교육과정심의위원, 자체평가위원회 평가위원, 서울시교육청 외국어교육정책자문위원장을 역임했고,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영어사교육포럼 대표를 맡고 있다. 10여 년에 걸쳐 대표 저자로 초·중·고 영어 교과서를 집필하는 등 영어교육 분야의 권위자이다.

특히 이 교수는 저서 「당신의 영어는 왜 실패하는가?」(우리학교, 2014년)을 통해, 학교 영어교육의 여러 논란과 영어 사교육과 조기영어교육 등 영어교육에 대한 우리 사회의 모순과 한계를 지적한 바 있다.

결정적 시기를 ‘영어를 배울 때에도 어느 특정한 시기가 있어서 우리 아이가 그 특정한 시기에 영어를 배우지 못하면 영어를 못 배우거나 배워도 힘들게 배운다’고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 영유아 영어교육 붐이 일고, ‘아, 우리 애가 이 시기에 영어를 배우지 못하면 뭔가 큰일이 나겠구나!’ 하는 부모들의 불안은 이 가설과 관련이 깊다. (「당신의 영어는 왜 실패하는가?」 139~140쪽)

실제로 이 ‘결정적 시기 가설’은 영어 사교육 시장에서 부모들의 불안감과 공포심을 자극하는 단골 소재로 활용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방송 프로그램에서도 문화센터 강사는 “아이들은 다섯 살 이전에 언어가 발달하기 때문에 엄마가 외국어를 자연스럽게 놀이처럼 배울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면 외국어를 모국어처럼 쓸 수가 있다”고 얘기한다. 영어학원에서도 “어린 시절부터 아이들을 이중언어 환경에 자연스럽게 노출시켜야 한다며” 결정적 시기 가설을 활용해 마케팅하는 것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난해 10월 30일 서울 신림동 서울대학교 이병민 교수 연구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이 교수는 “미국에는 ‘영어교육에 결정적 시기가 있다’는 논문이 많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 논문들이 말하는 ‘결정적 시기’란 ‘언제 미국에 이민 갔느냐’ 하는 것. 이민 시기가 아이들의 영어 능력에 영향을 준다는 내용이다.

이 교수는 “언어를 어릴 때 배울수록 좋다고 얘기하는 연구 논문은 ‘네가 미국에 언제 이민 왔느냐(Age of arrival)’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라며, “이런 상황에서는 한 살에 미국에 이민 온 아이가 네다섯 살에 온 아이보다 영어 능력이 훨씬 뛰어난 게 맞다”고 설명했다.

그러면 한국과 같은 상황에서도 영어교육 시기가 영어 능력에 ‘결정적’ 영향을 준다는 연구 결과가 있을까. 이 교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미국 이민 상황과 달리 한국에서는 일상에서 영어를 쓰지 않기 때문에 영어를 언제 시작했는지가 ‘결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얘기다.

미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일상생활에서 영어를 쓰는 사람이 거의 없고, 학교의 영어 수업시간은 한정돼 있다. 한국에서는 ‘질’을 결정할 만큼의 ‘양’을 충족시킬 수 없다는 말. 영어 조기교육을 위해 사교육을 선택하는 부모들이 기대하는 효과는 일어나기 어렵다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실제로 미국이나 다른 영어권 국가로 이민 간 조건이 아닌 경우, 즉 우리나라와 같은 조건에서 영어를 배울 경우, 나이가 아닌 노출된 시간, 강도, 조건, 환경, 동기 등 이런 것들이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연구는 많다. (「당신의 영어는 왜 실패하는가?」 145쪽)

◇ "구관조도 말은 따라한다… 유아 영어학원 방식, 언어교육이라 볼 수 없어"

이병민 교수는 유아 대상 영어학원에서 행해지는 교육 방식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이병민 교수는 유아 대상 영어학원에서 행해지는 교육 방식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Q. 교수님 말씀을 듣고 보니, 일상에서 영어를 쓰지 않는데 학원에서 잠시 공부한다고 해서 영어를 잘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듭니다.

“언어 습득 과정에서는 해당 언어를 사용하는 ‘양’이 ‘질’을 결정합니다. 한국처럼 일상에서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영어에 투입하는 시간, 즉 ‘양’이 현저히 적으므로 영어교육을 일찍 시작했다 하더라도 ‘질’의 변화가 일어나기 어렵다고 볼 수 있죠.

발음의 경우도 그래요. 우리는 경험적으로 어린 시절 영어공부를 시작하거나 영어권 국가로 이민을 간 경우 영어 발음이 더 좋을 것으로 생각하죠? 하지만 영어 노출이나 영어사용의 정도 등 다른 변수도 함께 조화를 이뤄야 해요.”

Q. 지금 이른바 ‘영어유치원’이라 불리는 전일제 유아 영어학원에서 행해지는 교육 방식에 문제는 없나요?

“부모들은 비싼 돈을 내고 전일제 유아 영어학원에 보냈으니 결과를 빨리 얻고 싶어 하죠. 그래서 결과를 보여주기 위해 학원에서는 따라 말하기나 암기 위주의 교육법을 택합니다. ‘Monday(월요일)’ 하고 교사가 얘기하면, 아이들이 다 같이 ‘Monday’ 하고 따라 소리치는 방식이에요.

또 분기에 한 번씩 영어 연극을 한다든지 행사를 열어요. 그 공연을 위해 아이들은 대사를 외우고 연습을 해요. 이런 식으로 언어를 외워서 배운다는 건 말이 안 돼요. 구관조에게도 반복적으로 훈련을 시키면 인간의 말을 흉내 낼 수 있어요. 이건 언어를 한다고 볼 수 없는 거죠. 

동영상을 틀어주고 노래를 들려주는 방식으로 언어를 배운다? 우리가 모국어를 그렇게 배우나요? 말은 일방적으로 배우는 게 아니잖아요.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부모나 형제, 또래와 어울리면서 자연스럽게 습득하죠. 누가 의식적으로 틀렸다고 고쳐주지도 않아요. 그게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언어를 배우는 방식인 거에요.

유아들이 하루의 상당한 시간을 보내는 공간은 아이의 언어 발달에 매우 중요하거든요. 그런데 아이들이 자라서 미국 초등학교에 다니거나 영어로 수업이 진행되는 학교에 다니지 않는 이상, 이런 질적·양적인 차이를 감수하고 영어만을 배우겠다고 유치원 시기를 보내는 것은 그다지 현명해 보이지 않아요. 

Q. 교수님께서는 저서를 통해 ‘영어를 능숙하게 하는 데 1만 1680시간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어요. 영유아기부터 영어교육을 빨리 시작해서 이 시간을 채워보겠다는 마음으로 영어교육을 시키는 부모들이 있을 수 있거든요.

“‘1만 1680시간’은 한 아이가 만 4세가 되면 자신의 모국어를 거의 완성하게 된다는 데서 착안한 가설이에요. 주변에서 들려오는 수많은 소리 언어와 상호작용 및 교류를 만 4년 동안 깨어 있는 시간에 한다고 본다면 하루 8시간 × 365일 × 4년 = 1만 1680시간이 되거든요. 그런데 한국과 같은 환경에서 영유아기에 1만 시간이 넘는 시간을 영어교육으로 채운다? 그러면 그 아이는 엄마와 관계를 끊어야 할 거예요.

제자 중에 유아 대상 영어학원을 운영하는 원장이 있어요. 그 친구가 학부모들에게 ‘우리 애가 유아 영어학원 다닐 때는 영어를 잘했는데 초등학교 들어갔더니 다 까먹었어요’라는 푸념을 듣는다는 거예요. 당연하죠. 영어학원에서 영어 몇 단어 외우고 반짝 실력이 늘었다고 해도, 그걸 유지하려면 초중고 내내 계속 영어 사교육이 필요할 거예요.”

유치원 단계에서 몇 개월 또는 1~2년 영어에 노출되었다고 해서 이 아이가 나중에 어떤 영어 발음을 갖게 될지 누구도 알 수 없다. 아무리 전일제 유아 영어학원에서 매일 몇 시간씩 원어민에게 노출되었다고 해도, 초등학교에 들어가게 되면 일상생활의 대부분이 다시 한국어로 이루어지는 우리나라 환경에서 영유아 시기의 잠깐의 영어 경험과 노출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예측하기 어렵다. 물론 크게 기대할 것이 없다고 보는 것이 옳다. (「당신의 영어는 왜 실패하는가?」 155~156쪽)

☞ (하편) "어릴수록 잘 배운다? 영유아 영어 사교육은 고비용 저효율"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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