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과 도박의 공통점, '본전' 생각에 못 끊는 것"
"사교육과 도박의 공통점, '본전' 생각에 못 끊는 것"
  • 김윤정·최규화 기자
  • 승인 2020.02.25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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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살 사교육, ‘불안’을 팝니다⑫] 이남수 「솔빛이네 엄마표 영어연수」 저자(上)

【베이비뉴스 김윤정·최규화 기자】

연간 3조 7000억 원 규모로 추정되는 영유아 사교육비. 등골 휘는 비용에도 많은 부모들은 ‘불안’ 때문에 오늘도 사교육을 선택하고 있다. 그 불안의 실체는 무엇일까. 우리에겐 어떤 대안이 있는 걸까. 베이비뉴스는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공동기획으로 열두 명의 전문가들을 직접 찾아가 답을 구했다. - 기자 말

이남수 강사는 인터뷰를 통해 올바른 엄마표 영어교육 방법을 알려줬다. 서종민 기자 ⓒ베이비뉴스
이남수 강사는 인터뷰를 통해 올바른 엄마표 영어교육 방법을 알려줬다. 서종민 기자 ⓒ베이비뉴스

“어떤 교육을 하든 가장 중요한 건 아이를 봐야 한다는 겁니다. 아이보다 영어가 중요한가요? 아이는 없어지고 영어만 남으면 무슨 소용이에요? 아이를 잃어버려 가면서 학원 하나, 학습지 하나 더 시키려고 애쓰지 말고, 차라리 그냥 아무것도 시키지 말고 아이한테 인상이나 쓰지 마세요. 엄마는 그게 더 중요합니다.”

‘엄마표 영어’ 때문에 속 끓이는 부모들에게 엄마표 영어 전문가 이남수 강사가 강조한 것은 ‘영어보다 아이를 보라’는 것이었다. 흔히 부모가 사교육을 선택하지 않고 집에서 직접 아이를 가르치는 것을 말하는 엄마표 교육. 사교육의 부작용 또는 비용 부담 등 여러 이유로 ‘엄마표 영어’를 선택하는 이들이 많다.

한 포털 사이트의 책 검색 페이지에 ‘엄마표 영어’를 입력하면 430여 종의 책이 검색된다. 태교 영어부터 영어 놀이, 영어 요리까지 방식도 다양한 교재들. ‘엄마표 영어’는 이미 영어교육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한 영어교육 업체가 2016년 학부모 52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87.7%가 자녀에게 직접 영어를 가르치는 ‘엄마표 영어’ 교육을 해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그리고 ‘엄마표 영어’ 교육을 해본 적 있는 이들 가운데 86.4%는 ‘영어교육으로 스트레스를 받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복수응답)로는 ‘본인의 영어 실력이 부족해서’라고 답한 비율이 54.4%로 가장 높았다. 이어 ‘가르치는 방법을 잘 몰라서’(47.1%), ‘시간적인 여유가 없어서’(35.3%), ‘영어 발음이 좋지 않아서’(32.3%), ‘자녀와의 사이가 점점 나빠져서’(23.6%)라는 등의 답변이 나왔다.

이 강사 역시 평범한 부모들이 하는 이런 고민을 갖고 ‘엄마표 영어’를 시작했다. 영어를 잘 하지도, 좋아하지도 않던 엄마였던 이 강사는 자신만의 노하우로 아이가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게 만들었고, 2001년 책 「엄마, 영어방송이 들려요!」를 펴내 평범한 아이와 엄마의 영어교육 성공담을 소개했다.

이 강사는 그동안 solbitenglish.com 대표강사,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울산지부 지부장, 울산부모교육협동조합 부모교육 강사,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부모교육 강사, 지역아동센터 자람터 영어교육 자문위원 등으로 활동해왔다. 현재도 전국을 다니며 ‘엄마표 영어’ 노하우를 전하며 많은 부모들의 고민을 듣고 있다.

또한 EBS ‘60분 부모’, SBS ‘그것이 알고 싶다’, EBS ‘다큐프라임’, KBS ‘행복한 교실’ 등 방송에 출연했다. 저서로는 「엄마, 영어방송이 들려요!」 「우리 아이 영어공부, 이게 궁금해요!」 「솔빛이네 엄마표 영어연수」 「부모 내공 키우기」 「솔빛이네 톡톡 튀는 영어연수」 「굿바이 사교육」(공저) 등이 있다.

‘엄마표 영어’ 전문가로, 또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대표강사로 오랜 시간 ‘평범한’ 엄마들의 ‘평범한’ 영어 고민을 해결해온 이 강사. 그를 지난해 11월 12일 세종시 고운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약 20년간 많은 부모들의 영어교육 멘토로 활동해온 이 강사에게 ‘아이를 잃어버리지 않는’ 영어교육 방법을 물었다.

◇ '모국어 그릇에 영어 담긴다'… "영유아기 모국어 못 배우면 영어도 못해"

영유아를 대상으로 한 TV 서비스 홍보 현장. 영어와 독서를 집에서 익힐 수 있다는 점을 내세웠다. 최규화 기자 ⓒ베이비뉴스
영유아를 대상으로 한 TV 서비스 홍보 현장. 영어와 독서를 집에서 익힐 수 있다는 점을 내세웠다. 최규화 기자 ⓒ베이비뉴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미래통합당 전희경 의원이 지난해 9월 교육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흔히 영어유치원으로 불리는 유아 대상 영어학원의 전국 평균 월 교습비는 90만 7000원. 기타 경비까지 포함하면 96만 6000원이었다. 연간 교습비는 1088만 원, 기타 경비까지 포함하면 1159만 원에 달했다.

영유아기 영어교육을 고민하면서 가장 크게 맞닥뜨리는 선택의 갈림길은 바로 ‘유아 대상 영어학원에 보낼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 강사는 “유아 대상 영어학원에 보내는 건 자유지만, 그 다음에 어떻게 그만큼의 영어 노출 환경을 유지할 것인지가 진짜 문제”라면서, 무분별한 ‘사교육 드라이브’를 비판했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이 강사는 “영유아기엔 모국어를 많이 들어야 한다”고 봤다. “모국어 어휘력이 영어 어휘력으로 연결”되기 때문. 그는 ‘모국어 그릇에 영어 담긴다’라는 말을 소개하며, “영어로 이해할 수 있는 어휘의 폭은 모국어로 이해할 수 있는 어휘의 폭을 절대 넘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영유아기는 언어능력이 폭발적으로 느는 때. 이 강사는 “모국어 어휘력이 부족한 아이들은 다른 언어에 대한 이해력도 떨어진다”며, “영유아기 과도한 영어교육으로 사고의 그릇이 크는 시기를 놓치면 공백이 생기고, 시간이 지나서 그 공백을 메우려면 그만큼 애를 먹을 수밖에 없다”고 조언했다.

Q. ‘엄마표’ 교육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무엇으로 꼽을 수 있을까요? 

“‘엄마표’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건 ‘조율’입니다. 부모와 아이의 의견을 조율하는 거죠. 그 결과보다 조율의 과정 자체가 중요합니다. 조율의 과정은 계속된 수정의 과정이죠. 부모가 정해놓은 교육과정만 무조건 밀어붙이면 당연히 아이가 하기 싫어하겠죠. 수정할 필요가 있으면 조율해서 수정하는 자세가 필요해요.

다만 조율 과정에도 아이의 발달에 따른 고려가 필요합니다. 너무 어릴 때부터 아이에게 너무 많은 선택권을 주는 건 바람직하지 않아요. 어릴 때 너무 많은 것을 허용하면 아이들은 오히려 더 불안해져요.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의 경계를 분명히 잡아줘야 하고, 나이를 먹어가면서 점점 더 선택권을 더 넓혀줘야죠.”

Q. 사교육이든 ‘엄마표’ 교육이든, 아이와 조율 과정 자체를 강조하신 말씀은 똑같이 적용될 것 같습니다. 

“무조건 ‘엄마표 교육’이 좋다는 건 있을 수 없어요. ‘엄마표 영어’를 해도 영어를 못할 수도 있고 잘할 수도 있죠. ‘엄마표 교육’이 아니라 사교육이라도 마찬가지고요. 중요한 건 ‘아이가 얼마나 즐겁고 편안하게 배우고 있느냐’ 하는 겁니다. 부모가 어떻게 가르치는지가 아니고, 아이가 어떻게 배우고 있는지가 중요하죠.

더 좋은 성과만 생각하고 선택하면 반드시 오류가 생겨요. 저는 필요하면 사교육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건 부모의 선택에 달린 거죠. 하지만 무엇을 선택하든, 중요한 건 아이를 봐야 한다는 거죠. 영어보다는 아이가 더 중요하니까요. 부모의 머릿속에서 아이는 없어지고 영어만 남으면 거기서 오류가 나는 거예요.”

Q. 일찍부터 사교육으로 영어 조기교육을 시켜온 부모들 중에는, ‘사교육이 아이한테 안 맞는 것 같지만 지금까지 시켜온 게 아까워서 포기할 수가 없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건 교육이 아니라 도박이죠. 지금까지 투자한 본전 생각하는 거 아닙니까? 아이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서 사교육 시킨 거 아니었나요? 지금 바로 그 아이가 불행해하잖아요. 그렇게까지 영어를 가르쳐야 하나요? 그래도 그동안 한 게 아까워서 포기 못하겠다면, 당신은 아이를 두고 도박을 하고 있는 겁니다.”

이 강사는 ‘엄마표 영어’를 할 때 ‘아이와 부모의 관계’를 가장 중요하게 고려할 점으로 꼽았다. 서종민 기자 ⓒ베이비뉴스
이 강사는 ‘엄마표 영어’를 할 때 ‘아이와 부모의 관계’를 가장 중요하게 고려할 점으로 꼽았다. 서종민 기자 ⓒ베이비뉴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출간한 「아깝다! 영어 헛고생」(우리학교, 2014년)에 따르면, 영어 사교육에 대한 대표적 오해로는 ‘영어교육은 빠를수록 좋다’, ‘우리말 배우듯이 유아 시기에 하루 30분 정도의 영어는 필수다’, ‘6~7세 무렵 유아 대상 영어학원을 보내는 게 좋다’ 등이 있었다.

예전에는 이 강사 역시 비슷했다. 영어공부를 빨리 시작할수록 좋다는 생각. 그래서 아이가 여섯 살 때는 학습지를 했다. 처음에는 아이도 영어공부를 재미있어 했지만, 진도가 너무 빨라지고 어려워지면서 문제가 생겼다. 자꾸 아이와 싸움이 나는 것이었다. 이 강사는 “허탕만 친 것”이라고 그때 경험을 이야기했다.

그 뒤로도 유치원에서 특별활동으로 영어를 가르치고, 원어민 강사가 영어를 가르치는 학원도 보내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레벨 테스트나 학원의 교육방식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아이의 모습을 보고 사교육을 그만두게 됐다. 이 강사는 “나도 그런 시행착오 끝에 ‘엄마표’ 교육으로 돌아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0세에서 초등학교 3학년까지는 ‘터잡기’ 기간이라고 할 수 있다.(터잡기란 영어 학습을 잘할 수 있는 기본 바탕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이 기간에는 ‘영어 학습’보다 평생 쓸 영어 감각을 익히는 것이 더 중요하다.(「솔빛이네 엄마표 영어연수」 29쪽)

◇ "학원은 끊어도 엄마는 못 끊어… '엄마표' 과하면 더 숨통 막힌다" 

그럼 ‘엄마표 영어’는 언제부터 하는 게 좋을까. 이 강사는 직접 경험한 수많은 상담 사례들을 근거로, 적절한 영어교육 시기를 ‘초등학교 3학년’으로 권했다. “정규교육과정 내 영어 수업이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시작되기도 하고, 모국어 발달이 안정적인 시기가 대개 3학년쯤이기도 하다”는 것이 그 까닭.

그러면서 이 강사는 “영어를 못하는 엄마들도 미디어를 활용하면 안정적으로 영어교육을 할 수 있다”고 권했다. 하지만 미디어 활용 역시 초등학교 3학년 전에는 하지 말라는 것이 이 강사의 의견이다. 스마트기기 등 미디어 중독은 나이가 어릴수록, 즉 초등학생보다는 유아가, 유아보다는 영아가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 강사는 실제로 아이의 모국어 발음이 정확해졌을 시기인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TV로 영어를 접하게 했다. 3학년 이전에는 영어에 노출하기보다 한글로 된 책을 직접 읽어주는 것에 초점을 뒀다. 초등학교 2~3학년까지는 직접 읽어주고, 이후로도 책을 읽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서로 나누는 활동을 했다.

2015년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평균 14년 경력의 소아정신의학과 전문의 1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그 결과 영어 조기교육에 대해 10명 중 7명이 ‘영유아의 정신건강에 부정적인 측면이 더 크다’고 답했다. 이유로는 ‘낮은 영어학습 효과’(60%), ‘정서발달에 부정적’(50%), ‘아이의 영어학습 거부’(40%)가 지목됐다.

이 강사도 ‘엄마표 영어’에서 가장 고려해야 할 점으로 ‘정서’를 꼽았다. “‘엄마표 영어’는 무조건 관계가 중요하다”는 것. “관계가 깨지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아무리 교습법이 좋아도 소용없다”고 강조했다.

Q. ‘엄마표 영어’를 해보려다가 아이와 싸우고 관계가 나빠졌다는 부모들도 많습니다.

“그런 걸 ‘엄마표 영어’가 아니라 ‘엄마표 입주과외’라고 표현합니다. 사교육과 다를 게 없죠. 그러면 엄마랑 사는 게 아니에요, 선생님하고 사는 거지. 오죽하면 하나부터 열까지 다 관리하는 엄마한테 질린 애들이 ‘학원은 끊을 수나 있는데 엄마는 끊지도 못한다’고 하겠어요. ‘엄마표’도 과하게 하면 더 숨통이 막혀요.”

Q. 영어교육 시작 시기로 초등학교 3학년 때를 권해주셨습니다. 혹시 그래도 영유아기에 영어 동화책을 읽어주는 것 정도는 미리 시작하고 싶다는 부모들이 있다면, 어떤 조언을 해주시겠습니까?

“우선 영유아기에 미디어를 통한 영어교육은 매우 위험해요. 언어는 양방향으로 반응하면서 익히는 건데 미디어는 일방적으로 전달하니까요. 장시간 노출되면 비디오증후군(과도한 비디오나 텔레비전 시청으로 인해 유사 발달장애, 유사 자폐, 언어 장애, 사회성 결핍 등을 겪게 되는 것 - 기자 주)이 생길 염려도 있죠. 

기본적으로 영유아기에는 영어로 된 책을 접하지 않아도 된다고 보지만, 굳이 보여주고 싶다면 자극을 조금 낮춰서 보여주세요. 일주일에 30분 정도로만 하시고요. 초등학교 1~2학년 시기에도 하루에 한 시간 넘게 하진 마세요. 제일 중요한 건 영어보다 아이 정서니까, 아이의 정서에 맞춰가는 게 중요해요.”

☞ (하편) "조기교육은 부모 신경안정제… 갈수록 강한 약 찾게 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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