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유아교육의 '거짓말'… 아이도 없고 놀이도 없다"
"50년 유아교육의 '거짓말'… 아이도 없고 놀이도 없다"
  • 김재희·최규화 기자
  • 승인 2020.02.19 13: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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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살 사교육, ‘불안’을 팝니다⑪] 임재택 부산대학교 유아교육과 명예교수(上)

【베이비뉴스 김재희·최규화 기자】

연간 3조 7000억 원 규모로 추정되는 영유아 사교육비. 등골 휘는 비용에도 많은 부모들은 ‘불안’ 때문에 오늘도 사교육을 선택하고 있다. 그 불안의 실체는 무엇일까. 우리에겐 어떤 대안이 있는 걸까. 베이비뉴스는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공동기획으로 열두 명의 전문가들을 직접 찾아가 답을 구했다. - 기자 말

영유아 사교육 업체에서 주장하는 조기교육의 연령이 돌 전후로 점점 낮아지고 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영유아 사교육 업체에서 주장하는 조기교육의 연령이 돌 전후로 점점 낮아지고 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은 놀이가 아이들 삶의 전부라는 진리를 숨기고 지우는 데 거의 성공한 것 같다.(「아이들은 놀이가 밥이다」 9쪽)

아동문학가이자 놀이운동가인 편해문 작가는 책 「아이들은 놀이가 밥이다」(소나무, 2012년)에서 ‘노는 아이들의 멸종’을 선언했다. 편 작가는 “놀이를 팔아 불안을 설파하고 싶지 않다”면서, “어린 아이들에게 놀이를 빼앗고 경쟁을 뚫고 마침내 승자가 되라고 닦달한다면 그것은 잔인한 짓”이라고 주장했다.

“아기가 11개월이라고 해도 영어 노출이 빠른 게 아니에요. 영어를 일찍 시작하는 것을 엄마들이 두려워하는 이유가 모국어 발달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인데, 우리나라에 살면서 과연 한국어를 못하게 되겠어요? 영어는 일찍 노출할수록 좋아요.”(한 영어교육 업체의 상담 내용 중)

한국은 어느새 ‘잔인한 짓’을 하는 국가가 돼버렸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매년 유아교육 박람회를 직접 찾아, 그곳에서 홍보되고 있는 영유아 사교육 상품들의 동향을 조사하고 있다. 2017년 12월에 발표된 그 결과에는 ‘영어교육에는 생후 11개월도 늦다’는 식의 위와 같은 상담 내용들이 담겨 있었다.

이 조사에서 영유아 사교육은 돌 전후로 시작시점이 낮아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으며, 몇몇 업체는 태교 제품에서 사교육 원리를 적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놀이’를 표방하는 사교육 프로그램도 여럿 확인됐다.

하지만 많은 유아교육 전문가들은 ‘놀이’ 뒤에 ‘교육’이 붙는 일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한다. 놀이를 표방한 학습은 효과가 없다는 것. 사실상 교과학습일 뿐인 활동에 ‘놀이’를 붙여 양육자의 판단을 흐리게 한다.

“그래서 내가 35년 동안 이런 짓을 해왔어!”

임재택 부산대학교 유아교육과 명예교수가 말하는 ‘이런 짓’이란 ‘생태유아교육’을 가리킨다. 지난해 10월 2일 임 교수를 서울 방이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만났다. 임 교수는 어린이 무상교육 추진과 만 5세아 조기취학 반대운동, 유보통합 일원화 운동까지, 유아교육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선 유아교육학계 원로다.

그는 아직도 학계의 ‘현역’으로 도전과 미래를 말하고 있다. 한국생태유아교육연구소 이사장, 부모애숲 이사장, 부산울산경남생태유아공동체 회장, 한국생태유아교육학회 고문, 한국숲유치원협회 고문 등으로 활동 중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유아교육 정책사업에도 참여하며, 부모 대상 강연도 활발하게 하고 있다.

인터뷰에서 임 교수는 “지금까지는 ‘교실 중심·수업 중심·교사 중심’ 유아교육이었다”라며, “1969년 유치원교육과정 제정 이래 지난 50년 동안 아동 중심·놀이 중심 교육을 한다고 해놓고 거짓말을 해왔다”며 강도 높은 발언을 이어갔다. 인터뷰 내내 유아교육의 현실에 탄식하고, 또 그만큼의 애정도 아낌없이 쏟아냈다.

◇ “생태유아교육, 섭리와 도리대로 키우는 ‘자연산 유아교육’”

유아교육학계 원로인 임재택 부산대학교 유아교육과 명예교수를 지난해 10월 2일 서울 방이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만났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유아교육학계 원로인 임재택 부산대학교 유아교육과 명예교수를 지난해 10월 2일 서울 방이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만났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생태유아교육은 교육자로서 임 교수의 삶과 궤를 같이한다. 아이들을 ‘토종닭’처럼 풀어놓고 자유롭게 키워야 한다는 ‘자연산 유아교육’을 임 교수가 주도했기 때문이다.

생태유아교육은 대안적인 유아교육의 한 갈래로, ‘산업문명 발달과 현대의 생태적 위기는 아이들의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건강을 위협받고 놀 자유를 잃어버린 아이들이 점점 더 이른 나이에 교육기관에 맡겨지는 현실에서 ‘제대로 키우는 방안에 대해 논의하자’는 움직임으로 도출됐다. 

임 교수는 2012년 글 ‘생태유아교육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에서 생태유아교육을 “우리 민족 고유의 생명사상과 전통 육아법은 물론 동서양의 생명사상과 생태사상에 바탕을 둔 유아교육 접근”이라고 정의했다.

Q. 1980년대 중반부터 ‘생태유아교육 운동’을 이끌어오고 계십니다. 생태유아교육의 교육법은 어떤가요?

“한마디로 ‘아이는 천(天)·지(地)·인(人)이 키운다’ 이겁니다. 책 보고 지식이니 이런 소리로 애들 키우는 거 아닙니다. 몸과 마음과 영혼이 건강하고 행복한 신명나는 아이로 키우는 교육입니다.

이를테면 ‘봄의 식물’, ‘나비의 한살이’ 이런 내용을 책으로 가르칠 필요가 없어요. 자연으로 나가서 뛰어놀다 보면 아이들은 다 배웁니다. 아이들을 가둬놓고 양식으로 키우지 말고 자연산으로 키워보세요. 선진국 유아교육은 다 그렇게 합니다. 대한민국은 왜 핀란드나 스웨덴처럼 자연산 유아교육 못합니까?”

Q. 생태유아교육 기관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입니까?

“자연의 섭리대로, 사람의 도리대로, 조상의 지혜대로 아이를 키운다는 점이죠. 자연 중심, 놀이 중심, 아이 중심으로 아이를 키워요. 50년간 대한민국에서 해온 유아교육에는 삶이 없고 놀이가 없어요. 이름은 ‘자유선택’ 활동이지만 자유도 없고 선택도 없는, 그런 식의 자유선택활동은 없앴어요.

아이들이 모든 관계의 주인이 돼야 합니다. 또 한 달에 한 번 부모가 교실까지 들어와서 청소를 같이 합니다. 청소가 목적이 아니라, 그러면서 아이가 노는 공간을 직접 다 보게 하는 거죠. 그러고 나면 부모가 직장에 가도 안심이 되지 않겠어요? 그런 교육으로 부모의 신뢰를 얻으면 보육실 CCTV를 뗄 수 있는 거죠.”

생태유아교육 기관은 산책, 텃밭 가꾸기, 세시풍속 잔치, 바깥놀이, 손끝놀이, 세대 간 통합 교육, 숲체험 등을 운영한다. 또한 소금 양치, 호흡·명상, 차 마시기, 유기농 먹거리, 채식 위주 식단 등도 특징이다.

임 교수는 2008년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생태유아교육 프로그램을 “사실 이런 프로그램들은 우리 조상들이 아주 오래전부터 집에서 실천해왔던 것들”이라며, “요즘에는 가정에서 이런 생활교육이 사라졌기 때문에 유아교육기관의 프로그램으로 되살려 놓은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 토종닭처럼 자연 속에서 자라는 아이… “신나는 아이가 미래 이끈다”

임재택 교수는 자연 속에 아이들을 풀어놓는 ‘토종닭’ 놀이 철학을 주장했다. 자료사진 ⓒ산림청
임재택 교수는 자연 속에 아이들을 풀어놓는 ‘토종닭’ 놀이 철학을 주장했다. 자료사진 ⓒ산림청

임 교수는 “생태유아교육 하는 어린이집은 뚱뚱한 아이가 없다”고 단언했다. 2016년 「생태유아교육연구」에 실린 ‘숲유치원과 일반유치원 만 3·4·5세 유아의 체격과 체력 비교 분석’은 임 교수의 발언을 증명한다.

생태유아교육을 하는 숲유치원과 일반 유치원 유아의 체격을 비교한 결과, 숲유치원 만 5세 유아가 일반 유치원 유아보다 체중이 적게 나가고 체지방량이 적으며, 비만도도 낮았다. 연구자들은 “숲활동 텃밭활동이 만 3세부터 2년 8개월 동안 꾸준하게 활동을 해온 만 5세 유아들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체력 면에서 만 3세 유아는 민첩성이, 만 4세 유아는 평형성과 순발력에서 유의미한 차이가 발견됐다. 만 5세 유아는 평형성, 순발력, 지구력, 민첩성 등에서 숲유치원과 일반 유치원 간에 차이가 있다고 확인됐다.

Q. 생태유아교육을 하면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는 어떤 변화를 가져옵니까?

“차이를 느끼는 정도가 아닙니다. 혁명적이에요. 영아를 돌보는 가정어린이집의 경우, 처음엔 일단 보육실 문을 다 열게 합니다. 열흘 동안 나이 상관없이 아이들을 마루에서 놀게 하면 서로 꼬집는 빈도가 반으로 줄어드는 걸 느껴요.

그다음은 대문을 열고 나가게 합니다. 아파트 앞에만 나가도 영아들이 놀 만한 모든 게 다 있습니다. 개미도 있고, 꽃도 있고요. 어떤 아이는 벌레 하나를 15분씩 보고 있어요. 뭐를 가르치려고 하지 말고 애들을 따라다니기만 해보세요. 그렇게 한 시간 동안 놀다 들어오면 꼬집고 싸우는 일이 또 반으로 줄죠. 

그다음엔 아파트 단지 안에서 한 시간 돌아다니고, 또 열흘 뒤에는 50m 반경에서 오전 내내 놀게 합니다. 한번은 학부모에게 전화를 받았어요. ‘전에는 애들이 밤에 잠도 잘 못 자고 자주 깼는데, 지금은 잠도 잘 자고 밥도 잘 먹고 어린이집 간다고 자기가 먼저 가방 메고 기다린다’고 해요. 이런 게 생태유아교육입니다.”

Q. 아이들의 변화에 대해 더 듣고 싶은데요, 직접 겪으신 에피소드를 더 들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생태교육을 해보니까, 아이들은 저보다 더 많이 알아요. 한 아이는 일곱 살인데, 글자를 몰라요. 그런데 도롱뇽 박사예요. 선생님보다 더 많이 알아요. 자기 집에 손님이 오면, 누구든 자기한테 도롱뇽 강의를 10분씩 들어야 통과시켜주는 아이예요. 또 손님들이 도롱뇽 책을 안 사오면 문을 안 열어준대요.

몸의 눈을 넘어서 마음의 눈과 영혼의 눈으로 도롱뇽을 연구하는 거예요. 육안(肉眼)으로 연구한 과학적 지식은 물론, 심안(心眼)이 열려 도롱뇽과의 진심 어린 대화와 공감을 통해 얻은 감성적 지식, 영안(靈眼)이 열려 도롱뇽 조상과의 영성적 소통을 통해 얻은 영적 지식을 모두 터득한 진짜 도롱뇽 박사입니다.

과학적 지식은 스마트폰에 다 들어 있지만, 이 아이가 연구한 정신적 지식은 스마트폰에 없어요. 새로운 것을 창출할 지식은 스마트폰에 있는 지식이 아니에요. 그걸 넘어서는 영적 지식이에요. 글자 아는 거랑 상관없어요. 이제 몸, 마음, 영혼이 건강하고 행복한 신명나는 아이들이 미래 사회를 이끌어갈 거예요.”

생태유아교육의 역사는 임재택 교수와 궤를 같이 한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생태유아교육의 역사는 임재택 교수와 궤를 같이 한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임 교수는 ‘놀이는 아이가 이미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놀이의 주도권은 아이에게 있다는 것. 인공적인 놀잇감을 주고 상황을 만들기보다는, 자연 속에 아이들을 풀어놓는 임재택 식 ‘토종닭’ 놀이 철학이다.

2012년 방송된 EBS 다큐프라임 ‘놀이의 반란’은 놀이가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발달에 어떤 효과가 있는지를 살펴 올바른 육아 방법을 고민하는 계기를 만든 프로그램이다. 

이 방송 내용을 엮은 책 「놀이의 반란」(EBS 놀이의 반란 제작팀, 지식너머, 2013년)도 임 교수와 마찬가지로 놀이에서 ‘아동의 주체성’을 강조했다. 제작진은 ‘놀이에도 진짜와 가짜가 있다’고 설명하면서, ‘아이가 놀이를 주도적으로 하고 있는지’를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기준으로 제시했다.

놀이가 놀이 자체로 아이들에게 즐거움을 줄 때, 그 가치는 가장 커진다. 아이들의 놀이는 반드시 아이가 원하고, 즐거움을 느끼고, 아이가 주인공이 되어 그 놀이를 이끌어나가야 진정한 놀이가 되는 것이다. 누구도 아이에게 놀이를 강요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놀이의 반란」 151쪽)

놀이는 영유아기 아이들의 성장에 필수 요소다. 최근 정부도 ‘놀이가 유아기 아이 성장에 미치는 중요성’을 인지하고, 홍보자료나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등의 정책 지원에 나섰다.

2016년 경기도교육청과 교육부가 제작한 홍보자료 「놀이, 아이 성장의 무한공간」은 ‘유아기 놀이’를 “배움의 수단이고 통로이며, 배움의 즐거움을 알게 해 줄 뿐 아니라, 자기 주도적이고 자발적인 학습을 경험하는 최적의 방법”이라고 정의했다.

또한 “부모가 적절하지 못한 보살핌과 양육 태도로 유아의 놀이를 온전하게 제공하지 못하거나 방해했을 때 유아의 인지적 발달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하편) '1년에 2천만 원' 놀이학원에 진짜 놀이가 있습니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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