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2천만 원' 놀이학원에 진짜 놀이가 있습니까?
'1년에 2천만 원' 놀이학원에 진짜 놀이가 있습니까?
  • 김재희·최규화 기자
  • 승인 2020.02.19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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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살 사교육, ‘불안’을 팝니다⑪] 임재택 부산대학교 유아교육과 명예교수(下)

【베이비뉴스 김재희·최규화 기자】

연간 3조 7000억 원 규모로 추정되는 영유아 사교육비. 등골 휘는 비용에도 많은 부모들은 ‘불안’ 때문에 오늘도 사교육을 선택하고 있다. 그 불안의 실체는 무엇일까. 우리에겐 어떤 대안이 있는 걸까. 베이비뉴스는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공동기획으로 열두 명의 전문가들을 직접 찾아가 답을 구했다. - 기자 말

☞ (상편) "50년 유아교육의 '거짓말'… 아이도 없고 놀이도 없다"에서 이어집니다.

임재택 교수는
임재택 교수는 "놀이방법은 아이가 안다"며 놀이의 주체성을 아이에게 되돌려줄 것을 당부했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하지만 한국 아이들이 놀이를 잃어버렸다는 지표는 여러 곳에서 확인된다. 보건복지부의 ‘2018년 아동종합실태조사’에서 한국 아동의 행복 수준은 10점 만점에 6.57점으로 조사됐다. 5년 전인 2013년 6.10점보다 약간 상승했지만, OECD 회원국들과 비교했을 때 행복도 수준은 ‘꼴찌’다.

실태조사에서 만 9~17세 아동의 70% 이상은 ‘평소에 시간이 부족하다’고 응답했다. 아이들은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이유로 학교(27.5%), 친구관계·학교 밖 활동(27.0%), 학원 또는 과외 수업(23.3%), 자기 학습(19.6%) 등을 들었다. ‘학습’ 때문에 시간이 부족하다는 응답이 70.4%를 차지한 것이다.

UN 아동권리위원회 또한 한국에 ‘아동에 휴식과 여가 시간을 확보해줄 것’을 여러 차례 권고했다. 지난해 9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있었던 UN 아동권리협약 이행 제5·6차 국가보고서 심의 현장에서도 ‘과도한 교육시간 때문에 개선된 놀이정책에 실효성이 의심된다는 점’을 지적받았다.

심사 이후 채택한 최종견해에서도 UN 아동권리위원회는 ‘사교육 의존도를 줄일 것’과 ‘휴식, 여가 및 놀이에 대한 관점과 태도를 전환하기 위한 프로그램과 캠페인을 실시할 것’을 권고했다.

노는 법을 잃어버린 아이들은 ‘놀이’도 배운다. 놀이도 사교육 하는 시대. ‘놀이’라는 단어 뒤에 ‘학교’와 ‘교육’이 따라다니는 일이 이제는 어색하지 않다. ‘공부처럼 배워야 하는 놀이’, 또는 반대로 ‘놀이를 가장한 공부’가 흔해진 세상이다. 많은 양육자들은 ‘아이에게 놀이를 가르치기에 알맞은 곳’을 애타게 찾고 있다.

인터넷 맘카페에서는 ‘놀이를 배우는 것이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묻는 게시물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난 6일부터 12일 사이 7일간 한 포털사이트 카페 게시물에서 “놀이학교”를 검색했다. 그 결과 211건의 게시물이 나왔다. ‘동네에 있는 괜찮은 놀이학교를 추천해달라’는 글도 여럿 눈에 띄었다.

“어린이집과 놀이학교는 비용에서 많은 차이가 나네요. 놀이학교에 한 달에 100만 원씩 지불해도 안 아까울 정도로 커리큘럼이나 분위기가 괜찮은지 궁금합니다.”(A 인터넷 맘카페 게시물)

“집 근처 유치원에서 자리가 하나 났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원비는 월 40만 원 정도라 하구요. 아이는 지금 놀이학원 다니고 있어요. 방과 후 (과정)까지 하면 한 달에 70만 원 정도 내요. 매달 30만 원 정도 차이 나니까 고민됩니다.”(B 인터넷 맘카페 게시물)

이들 ‘놀이학교’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박경미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2017년 국정감사 당시 서울시 관할 유아대상 교습학원 현황’을 공개했다. 이 자료에서 놀이학원 1년 평균 학비가 1000만 원에 달하며, 2300만 원이 넘는 학원도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원어민·이중언어교사의 놀이 언어프로그램, 놀이테라피, 통합아트 등을 운영한다’고 홍보한 서울 서초구 한 학원의 한 달 교습비는 171만 원. 급식비와 차량비 등까지 합하면 한 해 동안 무려 2340만 원이 든다.

◇ 정부도 ‘교육 불안’ 거드는 사이, 아이들은 놀이를 잃는다

1년에 2300만 원짜리 놀이학원에서 하는 것은 과연 놀이일까 학습일까. 놀이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학습은 사교육 시장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정부도 ‘놀이’를 면피용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교육부는 2018년 10월 유치원과 초등 1·2학년 방과 후 영어수업 허용 방침을 차례로 밝히면서, ‘놀이 중심’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교육시민단체들은 즉각 반발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 정치하는엄마들,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등 21개 단체들은 2018년 10월 16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기자회견에서 “진짜 ‘놀이 중심’, ‘유아 중심’ 유치원 교육과정 개정을 하는 와중에 놀이를 가장한 학습 프로그램에 불과한 ‘놀이 중심 영어방과후’ 발표는 교육부의 정책 일관성에도 위배된다”고 비판했다. 

21개 교육시민단체는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2018년 10월 16일 합동 기자회견을 열고, 유치원·초등1,2학년 방과후 영어 허용을 발표한 교육부에 유감을 표시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21개 교육시민단체는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2018년 10월 16일 합동 기자회견을 열고, 유치원·초등1,2학년 방과후 영어 허용을 발표한 교육부에 유감을 표시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또 “아이들의 놀 권리를 침해하고 놀이를 가장한 학습을 공식적으로 허용하는 것에 불과”하다며, “우리말로도 잘 놀지 못하는 유아들이 도대체 왜 영어로 놀이를 해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Q. 놀이와 학습이 결합된 개념이 사교육-공교육 할 것 없이 퍼져 있습니다. 진정한 놀이의 의미는 뭘까요?

“놀이는 누가 만들어줘서 하는 게 아니에요. 아이가 직접 만들어야 해요. 교수가 ‘이게 놀이다’ 한다고 해서 그게 놀이가 아니죠. 아이가 놀이라고 해야 놀이죠. 아이들은 진짜 놀이가 무엇인지 알고 있어요.

아이들이 놀이를 어떻게 만들어오는지 한번 보세요. 아이들은 지금, 여기, 자신의 놀이를 만들어요. 아이들은 모두 놀이 천재예요. 제주도 아이들은 제주도 아이답게 놀고, 부산 아이들은 부산 아이답게 놀아요. 겨우내 눈이 오는 곳과 눈이 안 오는 곳 애들은 놀이도 당연히 다르지!”

Q. 교수님은 유아교육 기관에 대한 컨설팅 활동도 활발히 하고 계신 것으로 압니다. 여러 곳의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가보셨을 텐데, 직접 다니면서 느낀 대한민국의 유아교육 현장,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아동학대를 예방한다고 보육실에 CCTV를 달자고 하는데, 이런 처방은 문제를 모르고 하는 겁니다. 아이 입장에서 생각해보세요. 보육실에만 열두 시간씩 갇혀 있죠, 문도 안 열어줍니다. 어른도 그 좁은 방에서 하루 종일 있으라 하면 스트레스 안 받겠어요? 오후쯤 되면 애들끼리 깨물고 싸우는 일들이 많아져요.

교사도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일해요. 방광염을 달고 살고, 밥 한 끼 제대로 먹을 시간도 없이 바쁘게 일해요. 또 대한민국 교육은 과정 자체가 잘못돼 있어요. 아이들이 머리가 좋아지려면, 초등학교 입학 전에는 글자와 숫자는 접근 못 하게 해야 해요. 취학 전에 학습을 시키는 건 아이를 죽이려는 작정입니다.”

지난해 10월 임재택 교수는 베이비뉴스와 인터뷰에서 아동 행복 중심 보육을 위해서 교사 대 아동 비율을 줄이고 유보일원화를 추진할 것을 제안했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지난해 10월 임재택 교수는 베이비뉴스와 인터뷰에서 아동 행복 중심 보육을 위해서 교사 대 아동 비율을 줄이고 유보일원화를 추진할 것을 제안했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임 교수는 김은주 부산대학교 교수, 서영희 동부산대학교 교수와 함께 쓴 책 「대한민국 유아들의 서로 다른 두 모습 : 우리 아이들, 유아교육기관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공동체, 2018년)에서도 기관 내 유아교육의 현실을 관찰하고 ‘교실·수업·교사 중심의 유아교육 현장’을 강하게 비판했다.

책에서 저자들은 유아교육과 보육의 현장 속에서 ‘아이’가 사라진 이유를 “누리과정과 표준보육과정은 2000년대 후반부터 시행되고 있는 유치원 평가와 어린이집 평가인증 지표가 되기 때문에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교육·보육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현장을 더욱 옥죈다(13쪽)”고 분석했다.

유아교육·보육과정 개정의 역사 속에 과연 아이가 있었는지 묻고 싶다. 누구를 위한 교육·보육과정인가? 국가의 지도, 관리, 감독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수단화되어 있지는 않았는가? 초·중등 교육과 대등한 유아교육의 위상과 유아교육 관계자들의 위상을 높이는 데 교육·보육과정이 활용된 것은 아닌가? 어른들의 논리와 욕심과 필요가 아이들의 삶을 볼모로 한 것은 아닌가?(「대한민국 유아들의 서로 다른 두 모습」 13쪽)

◇ “영유아기 글자·숫자 노출 막아야… 취학 전 학습은 아이 죽이려는 작정”

최근 서울시는 생태유아교육을 통해 보육현장에서 놀이를 되살리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지난해 7월, 거점형 ‘생태친화 어린이집’을 2022년까지 자치구별로 5개씩 모두 125개 조성한다고 밝힌 것. 

그 일환으로 지난해 4개 자치구에서 생태친화 어린이집으로 20곳을 선정했다. 선정한 어린이집은 놀이공간 등 생태 관련 시설 조성, 생태친화 보육 프로그램 개발과 컨설팅을 지원하고 교사와 부모들의 다양한 연구모임과 공유활동을 지원한다. 임 교수는 생태친화 어린이집 개발 전반에 직접 참여했다.

서울시는 생태친화 보육을 “유아숲 체험 등 자연친화적인 보육활동을 넘어 아이의 욕구를 중시하고 아이다움의 구현을 도와주는 보육”으로 정의했다. 그리고 ‘건강하고 행복한 아이로 자라도록 돕는 한편, 서로 믿고 협력하는 보육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생태친화 어린이집을 도입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는 생태친화 어린이집이 아이와 기관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서울시 생태친화 어린이집 안내서」는 ▲수업시간에 흥미를 잃는 아이 ▲아이들이 관심 없어 하는 활동이나 교구 ▲수업에 참여하지 않으려고 하는 아이들과의 실랑이 등이 생태친화 어린이집에서는 없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해 서울시는 "아이다움의 구현을 도와주는 보육"인 생태친화 어린이집 사업을 도입했다. 임재택 교수는 사업 개발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지난해 서울시는 "아이다움의 구현을 도와주는 보육"인 생태친화 어린이집 사업을 도입했다. 임재택 교수는 사업 개발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서울시가 생태보육을 도입한 것은 누리과정의 변화와도 맞물려 있다. 누리과정은 만 3~5세 유아를 대상으로 하는 공통의 유아교육·보육 과정. 3월부터 시행하는 새 누리과정은 ‘놀이 중심·아이 중심’으로 개정된다.

개정 누리과정은 자유놀이를 중심으로 유아교육·보육 현장이 꾸려질 수 있도록, 종전의 누리과정을 간략화한 형태다. 이와 함께 어린이집 평가제도도 새 누리과정에 맞게 개편된다. 그 때문에 각 어린이집과 유치원은 운영철학과 상황에 맞춰 교육계획을 세울 수 있게 됐다. 

Q. 개정 누리과정은 ‘놀이 중심·아이 중심’을 내세웠습니다. 이번 개정은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보십니까?

“이번 누리과정이 유아교육 현장에 잘 정착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우선 아이가 행복한 교육과정을 만들고, 유보(유아교육-보육) 통합을 해서 유아교육 인프라를 갖춰야 해요. 가정어린이집은 영아학교, 유치원은 유아학교로 바꾸고, 영유아가 같이 있는 어린이집은 영유아학교로 바꿔야 합니다. 관리는 교육부가 하고요.

이번이 기회입니다. 이 기회를 놓치면 앞으로 대한민국 유아교육에는 희망이 없어요. 각 정당들이 총선 공약으로 생태유아교육, 유보통합, 보육료 문제 해결을 넣도록 할 겁니다. 이렇게 되면 선진국으로 가는 유아교육 인프라를 구축하는 거예요. 도로, 철도, 항만 놓는 것보다 이게 훨씬 더 중요한 가치산업입니다.”

Q. ‘아이가 행복한 교육과정’이 현장에서 이뤄지려면 교사 대 아동비율도 개선돼야 할 것 같습니다.

“그동안 완벽한 ‘어른 편익’ 중심이었어요. 그걸 ‘아이 행복’ 중심으로 바꿔야 해요. 엄마 보고 하는 보육이 아니라, 아이 보고 하는 보육이어야 해요. 교사들이 아이들 사진 찍어 올리느라 정작 아이들을 못 봐요. 부모들에게 검사받느라고요. 최악은 재롱잔치 하는 기관입니다. 그런 데는 얼마 안 가서 망하게 해야 돼요.

보육료 예산도 올려야 해요. 보육료를 동결해서 상당수 어린이집이 경영이 안 되니까 특별활동 하고 학습지를 돌려요. 돈도 되고, 교사도 쉬고, 장시간 아이들을 돌리고, 일거삼득이죠. 여기서 악순환이 발생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에겐 치명적이에요. 그래서 보육료를 물가와 임금 상승률에 맞추는 법안을 추진 중입니다.”
  
Q. 끝으로 유아교육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말씀해주십시오.

“지난 50년 동안 유아교육을 망쳐놨어요. CCTV로 감시하는 교육을 만들어놨어요. 닭장같이 만들어놨어요. 양계장, 양어장 알죠? 완전 양아(兒)장을 만들었어! 유치원에 가두고 어린이집에 가둬서 키우고 있어요. 아이들을 가둬 키우는 방법만 발전시킨 게 이 나라 유아교육의 역사예요.

전체 유치원과 어린이집 중 70~80%가 생태유아교육을 할 때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감시와 의심으로 아이를 키우는 나라가 어떻게 선진국이 됩니까. 보육실에서 CCTV를 떼는 게 제 목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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